지난 19일(일)부터 23일(목)까지 4박 5일간 길동무 둘레길 동호인 모임 38명은 DBS크루즈훼리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여행'을 다녀왔다.

블라디보스톡(Vladivostor)은 '동방을 지배하다'라는 뜻이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러시아의 도시이며 시베리아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로 러시아 극동 지역의 중요한 공업, 교통, 문화의 도시다. 시내를 중심으로 개성적이며 예술적인 건물들과 고색 창연한 건물들이 많아서 산책하는 즐거움이 큰 곳이다.

블라디보스톡은 지금은 러시아 영토가 된 곳으로 유럽을 옮겨놓은 지역이다. 과거고구려와 발해 땅이었으나 명나라와 청나라의 지배를 받다가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러시아 영토가 됐다.

우리 민족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하는 아픔도 겪었지만, 현재 5만여 명이 살고 있다. 일제 시절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다. 최초의 임시정부인 ‘대한광복군 정부’가 이곳에서 결성됐다.

우리 선조의 땅이랄 수 있는 광활한 땅에 빼앗긴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곳이 바로 연해주이기도 하다.

▲ 추암해변, 촛대바위

19일(일) 7시 30분에 종합운동장에서 모인 일행은 세부관광버스를 타고 동해에 도착해 전국최고의 일출 명소인 추암 촛대바위에 올랐다. 푸른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여행의 설레임을 달래본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출항시간에 맞춰 동해국제 여객 터미널로 이동해 출국수속을 마치고 ‘DBS크루즈훼리’에 올랐다.

DBS크루즈훼리(주)는 2009년 6월 첫 출항 이후 일본 사카이미나토항과 블라디보스톡항을 각각 주 1항차씩 운영하고 있는 선박회사다. 13,000톤급으로 정원 530명(선원 50명 포함)이 탈 수 있다, 

이코노미 2층 침대와 플로어 다인실(선내 뷔페실)이 있고 부대시설로 레스토랑, 나이트클럽, 바, 사우나, 면세점, 안내데스크 등이 있다.

조별로 방 배치를 받고 짐을 푼뒤 선상 갑판에 올라 동해 바다의 아름답게 물들은 일몰도 촬영하고 간단한 음식과 주류를 마시며 파티도 열었다.

20일(월) 5시 30분 선상에서 일출을 카메라로 담으며 하루의 일정이 시작됐다. 우린 함께 어울려 즐기고 뷔페로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동해항에서 블라디보스톡은 24시간이 소요된다. 그런데 별안간 DBS크루즈에서 일정이 변경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태풍 솔릭으로 인해 블라디보스톡에서 1박만 하고 돌아와야 했다.

▲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들의 승리의 아취라 불리는 개선문

오후 2시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해 입국심사(현지시간 기준 1시간 시차)를 마치고 현지 가이드인 정가희와 미팅을 한 후 블라디보스톡 시내 관광을 했다.

먼저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들의 승리의 아취라 불리는 개선문을 방문했다. 1891년 5월 11일,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의 블라디보스톡 방문을 기념하기 위한 개선문이라 한다. 또 참전 용사들의 이름을 담은 기념비와 무명용사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원의 불꽃을 탐방했다.

그리고 당시에 14대의 적함을 침몰시킨 전설적인 C-56 잠수함 박물관 내부를 관람했다. 여기 도착해 가장 먼저 눈길을 끌었던 금색과 옥색의 돔형 지붕은 연해주에서 가장 큰 정교회 사원이었다.

▲ 혁명광장

혁명광장으로 이동해 연해주 행정을 담당하는 연해주 주청사와 블라디보스톡의 심장인 혁명광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담았다. 역사 내부 벽 장식에는 러시아의 상징인 '쌍두 독수리' 국장이 있고 블라디보스톡의 상징인 '호랑이'가 보였다. 혁명광장은 중앙대회인 ‘스베들란스카야’의 중심에 위치한 광장이며 영화 ‘태풍’의 촬영지다.

아르바트 거리는 모스크바에 있는 거리를 본떠 만든 곳으로 우리나라 가로수길 처럼 젋은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좀 더 걸어가니 바다를 테마로 한 해양공원이 나왔다. 이 곳에서 많은 한국인들을 만났다.

▲ 독수리전망대

또 블라디보스톡의 시내와 금각만과 아무르만, 그리고 주변의 멋진 섬들의 모습과 시내 전역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독수리전망대로 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긴 사장교 '루스키 대교'가 첫눈에 보였다, 이 곳은 독수리의 둥지라는 뜻의 산으로 러시아 극동함대, 구소련 태평양 함대의 모항인 블라디보스톡 항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다.

저녁식사는 러시아정식 킹크랩으로 푸짐하게 포식하고 쇼핑를 한 후 숙소인 ZHEMCHUZIHA 호텔에서 투숙했다.

▲ 아르바트 거리

21일(화) 호텔식으로 조식 후 성모승천 대성당을 들렸다. 블라디보스톡에서 가장 큰 그리스정교회 포크롭스키 성당이다.  대성당에는 머리에 수건을 쓰고 들어가야 했고, 러시아 정교의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또 수많은 독립운동계획들이 수립되었던 한인 독립운동의 전진 기지를 기념하여 만든 신한촌 기념비를 방문했다. 고려인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촌락으로 신한촌은 당시 규모가 가장 큰 고려인 거주지였으며, 1910년대 항일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 시베리아 대륙횡단열차

오전 11시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종점이자 시발점인 블라디보스톡 역 대륙철도로 이동했다. 시베리아 대륙횡단열차를 타기위해 심사장을 거쳤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 등장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여행자들이 한번 경험해 보고 싶은 오랜 로망이다. 모스코바까지 달리고 싶지만 아쉽게도 일정상 계획과는 달리 세단카 구간까지 다섯 번째의 정류장을 20분간 달렸을 뿐이다. 

관광차로 이동해 우수리스크를 방문했다. ‘늪지대’라는 뜻에서 기원한 우수리스크에는 1만 명의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 연해주 제2의 도시로 북한, 중국과 연결된 시베리아횡단철도 물류 수송망을 바탕으로 물류중심지가 되고 있다.

고려인문화센터 내 역사관에서 영상을 시청하고 둘러봤다. 혹독한 환경과 정치적 탄압 속에서 고려인들은 아리랑을 부르면서 회한을 달랜 자료들이 진열돼 있었다.

아리랑은 아이와 어른 누구라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라도 러시아·중국·한국 어디에서라도 한민족은 아리랑을 부른다. 아리랑은 이국을 떠돌던 해외 동포들에게는 아리랑에서 힘을 얻어 고난한 생명력을 불러 일으켜 한을 달랬던 것이다.

고려인과 연해주는 고조선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역사와 삶을 함께 했던 지역이다. 조선후기인 1863년에 함경도 농민 13가구가 연해주로 이주하면서 고려인의 이주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전후부터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연해주로 망명하여 항일운동의 중심지다.

▲ 안중근 의사 표석

러시아 한인 이주 140 주년 기념관은 연해주 한인동포들의 문화를 유지하고 친선, 화합, 학술, 교육, 문화 활동의 증진을 위하여 한인동포들의 염원을 담아 대한민국정부의 지원으로 2004년 러시아 한인이주 140주년을 기념하여 2009년에 건립되었다.

인류의 행복과 미래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1879~1910)는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1907년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하여 항일의병장으로 활동하던 중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한국독립과 동양평화를 구현하기 위해 대한침략의 원흉인 일본 추밀원의장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함으로써 한국인의 기개를 드높였다. 1910년 3월 26일 중국 뤼순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우스리스크에는 연해주에서 항일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던 최재형 선생이 최후까지 살던 집이 있다. 이 집은 연해주 항일 독립 운동의 본부였다. 최재형 선생은 함경북도 경원에서 태어나 아버지 최흥백 형 알렉세이와 함께 연해주 남부 진신허 마을로 이주해 살았다.

▲ 이상설 선생 유허비

그리고 우수리스크 시민공원에서 발해 거북이 석상을 보고 대한독립운동가 이상설 유허비에 들렸다. 이상설 유허비가 뿌려진 수이푼 강변은 늪지대로 온통 진흙투성이고 강물도 황톳물이다.

이상설 선생 유허지에 있는 표석에는 ‘보재 이상설 선생은 1870년 한국 충청북도 진천에서 탄생하여 1917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서거한 한국 독립운동의 지도자이다. 1907년 7월에는 광무(고종)황제의 밀지를 받고 헤이그 만국평화 회의에 이준 이위종을 대동하고 사행하여 한국독립을 주장하다. 이어 연해주에서 성명회와 권업회를 조직하여 조국독립 운동에 헌신 중 순국하다. 그 유언에 따라 화장하고 그 재를 이 곳 수이푼 강물에 뿌리다.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은 2001년 10월 18일 러시아 정부의 협조를 얻어 이 비를 세우다.’고 쓰여 있다.

▲ 젊음의 거리(나베레즈나야 거리)

블라디보스톡 해변은 시민의 휴식처로 여름이 되면 일광욕과 해수욕 장소로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젊음의 거리(나베레즈나야 거리)를 산책했다.

점심은 우수리스크에서 중국식으로 식사를 하고 관광버스로 블라디보스톡으로 돌아와 해변이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러시아 꼬치구이 ‘사슬릭’, 샐러드, 보르쉬, 빵, 등과 보드카로 이른 저녁 식사를 하고 출국수속 후 탑승했다.

돌아오는 선상에서는 주류와 더불어 한차례 MP3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유희를 즐기며 자유 시간을 가졌다.

무엇보다 인상깊고 가슴 뭉쿨한 일도 있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60년간 살던 70대(여) 한인이 부모가 살던 한국이 그리워 파주에서 10년째 살고 있다며 반겼다. 일본에서 사할린 탄광촌으로 보내져 고생하던 부모 생각에 눈물이 앞선다고 했다, 불라디보스톡에는 결혼한 아들, 딸이 살고있어 한달간 여름휴가로 갔다가 돌아오는 중이라고 했다.

▲ [DBS크루즈훼리]선상

22일(수) 오후 4시 30분 동해항에 도착했다. 크루즈훼리에서 나오자 동해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김광현 친구가 마중 나와 있었다. 친구는 태풍으로 일정이 변경되었다는 길동무 회장의 연락을 받고 38명이 필요한 식당과 대명 쏠비치호텔을 예약해 놨다.

쏠비치 호텔 앤 리조트 삼척은 에게해의 그리스 산토리니를 떠올리게 하는 외관과 시원한 바닷바람이 이국적 정취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23일(목) 아침 산책을 한 후 해장국으로 식사를 하고 삼척 곳곳을 세부관광차로 돌다가 마땅치 않아 해신당공원을 갔으나 역시 태풍 솔릭의 북상으로 입장이 불가했다.

상경 시 점심은 '영월다하누촌'에서 한우꽃등심과 한우갈비살로 맛있게 식사를 하며 피로를 풀고 오후 4시30분경 잠실역에 도착해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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