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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수원화성" 기획 사진전 올해 말까지 전시

기사승인 2020.10.09  14: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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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토박이 "곽재용 영화감독"이 기증한 자료 볼 만해,수원박물관에서

▲ 잘 정돈된 수원박물관 전경

수원박물관을 찾았다. 교통이 좋아 기획전시가 있으면 자주 찾는 곳이다. 이곳은 수원의 역사를 알아보기 쉬운 자료들이 많은 편이다. 마침 지난 28일부터 재개관을 허용하여 부담 없는 마음으로 찾을 수 있게 했다. 박물관 입구에서는 엄격한 코로나 19 감염 예방을 위한 절차가 이루어졌다.

▲ 수원 출신 곽재용 영화감독 소개

'한국전쟁과 수원화성' 기획 전시가 한창이었다. 6월 25일부터 12월 31일까지 전시 기간이었다. 수많은 사진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수원 출신인 곽재용 영화감독이 기증한 사진이었다.

▲ 한국전쟁과 수원화성 전시 안내

1부는 전쟁, 70년이 지난 지금 잊혀 가는 느낌이 들었지만, 사진을 보며 어렴풋이 그때를 더듬어 봤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수원은 더 지리적으로 전략적 요충지였다. 북한군의 점령과 미군의 재탈환 그리고 중공군의 침략에 의해 수원화성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파괴됐다. 수많은 탱크와 폭격기에 화성은 파괴됐다. 처절했던 전쟁 당시를 고스란히 사진에 담았다. 이번 전시는 1950년대에서 60년대 까지 미군에 의해 촬영된 슬라이드 필름으로 수많은 자료가 수집되어 수원시에 기증된 것이었다.

당시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진기술로 모두가 흑백이었고 확연하게 달라진 지금의 수원의 모습을 보며 쉽게 실감이 나질 않았다. 길가에 방치된 탱크들, 북한군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탱크는 소련에서 지원받은 T-34/85 전차였다. 수원천을 건너는 미군 트럭 외 11개의 작품이 전시실 초입에서 제일 먼저 눈에 보였다.

 

▲ 화홍문과 수원천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전쟁 중에도 여유로움이 있다)

전면의 12개의 사진, 화홍문과 수원천 변에서 빨래하는 여성들의 사진이 가마득한 역사적 현실로 느껴졌다. 미군기의 폭격으로 중층 누각이 사라진 장안문을 보니 지금의 실물과는 상상이 안 됐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수원에는 남문이 남아 있고 서문은 서 있는데 북문은 부서지고 동문은 도망갔네”라는 말이 생겼다고 했다.

▲ 전쟁-분단-평화를 소망한다.

파괴된 남포루하며 역시 파괴된 서남 암문, 무너진 동북노대, 누각이 사라진 창룡문의 옹성 등 당시에 처참함을 느끼게 했다. 1부 ‘전쟁’을 마치고 2부는 ‘기억, 그리고 사람들’이 주제였다.

▲ 2부 기억해야 할 일, 그리고 사람들

전쟁 이후 도시가 제 모습을 찾기 시작한 역사의 기록이 마음을 안심시켰다. 성곽이 복원되고 도로와 다리가 정비되는 등 점점 삶의 활기를 찾았다. 팔달문 옆 시장도 열려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특별히 수많은 피난민은 연무동과 세류동에서 새로운 출발을 했다. 지금도 그곳은 수원의 역사가 숨 쉬는 곳이 됐다. 세류동이나 연무동을 제쳐놓고 수원의 역사를 말할 수 없었다.

▲ 전쟁이란 이런 것,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이제 사람들의 희망이 차차 보이고 전쟁의 상처가 아물어 갔다. 특별히 수원사람들은 꺾이지 않는 삶의 의지로 분단의 극복과 평화를 소망하게 되었다. 지금도 ‘수원 사람’ 하면 생활력이 강하고 삶에 있어 드세다는 말을 주변 사람으로부터 듣는다. 대표적인 수원천이 곧게 뻗어가며 기와집과 초가집이 정답게 줄지어 있는 모습이 정겹기까지 했다. 1932년 건축된 수원 최초의 고딕 양식인 북수동 성당이 폭격으로 파괴되었는데 이전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서호의 물을 방류하는 여수로(餘水路)와 낚시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지금과 비교해 볼 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장마가 지나가면 서호의 물이 제방 아래로 방류했다. 잉어와 붕어가 많이 잡혀 동네 사람들이 얼기설기 만든 낚싯대를 드리우며 한때 강태공이 되기도 했다. 지게를 짊어진 농부가 미군 사진사 앞에서 자세를 취하는 사진이 정겨웠다.

가마니에 흙을 담아 옮기는 1950년대의 원시적인 모습이 새삼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하나하나 사진을 보며 6.25 전쟁의 참상을 다시 기억했다. 약 3년간의 길고 긴 전쟁 속에서 잃은 것이 너무도 많았지만, 국민들의 재건으로 회복되는 기적을 일으킨 것이 자랑스러웠다.

다소 쓸쓸해 보이는 전시장 주변이지만 주말에 가족과 함께 산책을 즐기며 역사 공부를 하는 것도 코로나 19를 지혜롭게 극복하는 한 방법일 것 같았다.

김청극 부단장 gcku1@hanmail.net

<저작권자 © 광교IT기자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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