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시 상록자원봉사단(단장 이종화) 5명은 2020년 12월 4일(금) 오전 10시에 서울 둘레길 1~2코스인 양원역 ②출구에서 만나 신내역 – 묵동천 – 화랑대역 ④출구 – 경춘선 숲길 – 공릉산 백세문 – 군부대 부근 휴식처 - 불암산 입구 – 불암산 시비 – 상계역 앞까지 4시간가량 걸었다.

▲ 묵동천에서 기념사진을 찍다.(좌: 이종화 단장, 김창숙 단원, 복부순 단원, 이동희 산악대장)

넝쿨처럼 담벼락에 붙어있는 주황색 둘레길 표시, 손 소독제도 비치된 목동 천길, 오늘 산행을 마무리하는 느낌으로 마음도 가볍게, 다리도 가볍게 걸었다. 서울 속 시골에 온 듯 묵동천의 오리와 두루미의 모습 등 잔잔한 풍경이 정겹다. 가볍고 쉬운 길이여서 무리 없이 걸었다. 수락산(638m)과 불암산(508m)을 연결하는 코스이지만 지난번에 지나왔던 채석장 용지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동네 모습의 아름다움이 머리에 떠올린다.

▲ 묵동천에서 오리가 놀다.

이종화 단장은 “오늘은 춥네요. 서울 둘레 길은 걸을수록 아기자기한 맛이 그리워진다. 우리가 아는 서울을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걷는 것도 재미있고, 더 추워지기 전에 우리 동료와 함께 걸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섭섭하다”고 인사했다.

이동희 산악대장은 “양원역 – 화랑대 – 학도암 – 불암산 입구 – 재현중 – 상계역으로 약 4시간가량입니다. 개인별로 간식을 간단하게 준비하고 옷은 감기 들지 않도록 따뜻하게 준비하셔요. 다음 3코스는 12월 18일(금) 오전 10시에 광나루역 ② 출구에서 만난다”고 홍보했다.

▲ 불암산 입구 공릉산백세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다.

복부순, 김창숙 단원은“오늘 산행코스는 아주 쉽고 편안한 길이다. 우리가 걷기에는 길지도 않고 쉬운 산행이다. 고덕 – 일자산 3코스가 기다려진다. 코로나 19로 집에서 쉬기도 편치 않은데 좋은 공기 마시며 산행하는 즐거움이 마음이 흐뭇하다”고 밝은 표정이다.

 

오늘 산행에서 만난 명소를 몇 가지 소개하면

 

양원리는 태조 이성계가 묫자리를 정하고 돌아오는 길에 망우리 고개를 넘다가 떠다 마신 샘물의 물맛이 좋아 그 우물을 '맛이 좋다'는 뜻의 "양원 수"로 이름 지었다. 이에 유래한 마을의 이름이 바로 양원리, 양원역이다.

묵동천은 중랑구 묵동을 지나 중랑천과 합해지는 묵동천이 있다. 봉화산 아래에 있는 중랑구 묵동은 조선 시대에 먹을 만들던 고장이어서 먹 골이라고 했는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중랑구 묵동이 되었다. 먹골배가 나오던 곳으로 유명하다.

공릉동은 경기도 양주시 노해면에서 서울특별시로 편입될 당시 공덕리, 태릉, 강릉이 있고 그 안에 능 골이라는 큰 마을 두 개가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태릉동이라고 정하다가 공덕리 주민의 반대로 동명을 정하지 못하다가 두 마을 주민의 합의에 따라 공덕리의 공자와 태릉의 릉자를 따서 공릉동으로 명명하다.

태릉은 조선 제11대 왕 중종(中宗 재위 1506∼1544)의 두 번째 계비인 문정왕후(文定王后) 윤 씨 (1501~1565)의 무덤이다. 명종과 인순왕후 심 씨의 무덤인 강릉(康陵)과 함께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201호로 지정되었다. 문정왕후는 자신이 중종 옆에 묻힐 요량으로 장경왕후의 능 옆에 있었던 중종의 정릉(靖陵)을 풍수지리가 안 좋다 하여 선릉(宣陵) 옆으로 옮겼다. 하지만 새로 옮긴 정릉의 지대가 낮아 홍수 피해가 자주 일어나자 결국 그 자리에 묻히지 못하고 현재의 위치에 예정되어 중종 옆에 묻히려던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태릉은 왕비의 단릉(單陵)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웅장한 능으로, 조성 당시 문정왕후의 세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게 한다.

학도암(鶴到庵)은 조선 후기인 1624년(인조 2) 무공(無空)이 불암산의 한 암자를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창건한 사찰이다. 초기의 사찰 명칭은 알 수 없지만 전하는 말에 따르면 절 주위의 불암산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학이 이곳에 날아와 노닐었다고 하여 학도암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1878년(고종 15) 벽운(碧雲)이 중창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 성담(聖曇)이 주지로 있을 때 산림 10여 정보(町步)를 매입하여 절을 확장하였다. 1950년의 6·25전쟁 때 절이 소실되었고, 이것을 1965년 주지 김명호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절의 대웅전 뒤편 암벽에는 높이 13.4m의 거대한 마애관음보살좌상(磨崖觀音菩薩坐像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24호)이 새겨져 있다. 이 마애불상은 1870년대에 명성황후(明成皇后)의 발원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1819년(순조 19)에 제작된 부도가 남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학도암 [鶴到庵]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불암산은 원래 금강산에 있던 산인데 조선왕조가 도읍을 정하는데 한양에 남산이 없다는 소식에 금강산에서 한양으로 향했는데, 불암산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남산이 자리 잡고 있어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래서 불암산 자체가 서울을 등지고 있다는 전설이 있다.

▲ 산행을 마친 후 상계역 대합실에서 기념사진을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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